용인 서리 고려백자요지에서 만난 흙과 불의 고요한 시간

비가 갠 뒤 공기가 맑게 정리된 오후, 용인 처인구 이동읍의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를 찾았습니다. 논길을 따라 난 좁은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낮은 구릉 사이에 작은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에는 잡목과 풀들이 자라 있었지만, 그 아래로 희미하게 드러난 흙의 결이 다른 곳보다 단단해 보였습니다. 이곳이 바로 고려 시대 백자를 구워내던 가마터라고 하니, 평범한 산비탈 하나에도 오랜 시간의 흔적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잎이 흔들리며 은은한 흙냄새가 났고, 조용한 공간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새소리와 흙을 밟는 발소리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유적지로 보였지만, 오래 머물수록 그 속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1. 위치와 접근 동선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는 이동읍 서리마을 외곽의 완만한 야산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서리 고려백자요지’를 입력하면 마을회관을 지나 바로 입구까지 안내됩니다. 주차장은 협소하지만, 마을 앞 공터에 잠시 세워둘 수 있습니다. 입구에서 표지판을 따라 3분 정도 걸으면 유적 안내판이 보입니다. 길은 흙길이지만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중간중간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가마터로 향하는 길 옆에는 작은 논과 밭이 이어져 있으며, 곳곳에 흙 속에 박힌 파편이 빛을 반사하며 보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라 소박한 분위기였고, 오후 햇살에 언덕의 흙빛이 따뜻하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2. 유적의 구성과 첫인상

 

유적지는 크지 않지만, 고려 시대 백자 가마의 구조를 비교적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낮은 구릉을 따라 반원형으로 파인 지형이 연속되어 있는데, 각각이 가마의 연소실과 소성실이었던 자리입니다. 일부 구간은 복원되어 흙과 벽돌의 결합 구조가 드러나 있으며, 가마 내부 벽에는 불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바닥에는 도자기 파편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데, 대부분 백자편으로 유약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빛이 비칠 때마다 파편이 은은하게 반사되어, 단순한 흙덩이가 아닌 옛 장인의 숨결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변에는 보호를 위한 덮개와 안전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가마터 앞에 서니 이곳에서 수많은 백자가 만들어졌던 시간의 온기가 고요히 남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3. 고려백자요지의 역사와 의미

 

이 유적은 고려 후기, 13세기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경기 남부 일대에서 생산되던 백자의 주요 가마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시대 백자는 강화도와 개성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었지만, 용인 지역은 풍부한 점토층과 물, 땔감이 풍부해 도자 제작의 최적지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주로 왕실이나 사찰에서 사용할 청백색 계열의 백자를 생산했다고 합니다. 발굴 조사 결과, 접시, 완, 병 등의 파편과 함께 소성 과정에서 사용된 받침, 가마 구조 잔해 등이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유약의 색이 맑고 밝은 청백색을 띠는 점에서, 고려 후기 백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합니다. 안내문에는 “용인의 백자 요지는 고려 도자 기술이 지방으로 확산된 대표적 사례”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한국 도자문화의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4. 관리 상태와 현장의 분위기

 

가마터는 보호각 아래 정돈되어 있었고, 안내 표지판과 모형도 함께 설치되어 있어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주변의 풀들은 일정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가마 구조를 직접 내려다볼 수 있도록 데크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인위적인 복원이 많지 않아 오히려 자연스러운 형태가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햇살이 바닥의 파편에 닿으면 미묘하게 색이 변하며 반짝였고, 흙 속에 스며든 불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멀리서 가마 안쪽의 돌조각이 살짝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그 작은 소리조차 세월의 잔향처럼 느껴졌습니다. 관리소 직원분이 주기적으로 방문해 점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전반적으로 잘 보존된 상태였습니다. 고요하고 정제된 현장이었습니다.

 

 

5. 인근에서 함께 둘러볼 만한 곳

 

서리 백자요지 방문 후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호암미술관’을 추천합니다. 이곳에는 조선 도자기와 고려청자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가마터에서 느낀 여운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와우정사’의 불상군과 ‘용인농촌테마파크’도 가까워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좋습니다. 점심은 이동읍의 ‘백암순대국’이나 ‘이동갈비’ 전문점을 추천할 만합니다. 오후에는 인근의 ‘남한산성’이나 ‘에버랜드 힐링가든’으로 이동해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면 하루 일정이 풍성하게 이어집니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자연이 한 지역 안에서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코스였습니다.

 

 

6. 관람 팁과 유의사항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는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다만, 비가 온 뒤에는 흙길이 미끄럽기 때문에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습니다. 가마터 내부는 출입이 제한되며, 파편을 만지거나 채집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름에는 풀벌레가 많고, 겨울에는 바람이 매서우므로 계절에 따라 복장을 조절해야 합니다. 관람 시간은 30분 정도면 충분하지만, 안내문을 읽으며 천천히 걸으면 당시 도공들의 손길과 시간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오후 4시 무렵의 부드러운 햇살 아래에서 흙빛과 유약색이 어우러질 때, 유적이 가장 아름답게 보입니다.

 

 

마무리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는 겉보기엔 소박하지만, 그 안에는 불과 흙이 만나 만들어낸 예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돌과 흙, 그리고 바람의 냄새 속에서 옛 장인들의 손끝과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가마의 흔적뿐이지만, 그 안에는 고려인의 미의식과 정성이 켜켜이 남아 있었습니다. 조용히 걸으며 백자가 만들어지던 과정을 상상하니, 흙이 유약으로 변하고 다시 불에 의해 생명을 얻는 순간이 마음속에 그려졌습니다. 다시 찾는다면 봄, 산비탈의 풀잎이 새로 돋아나는 시기에 와서 그 생명의 기운 속에서 도공의 숨결을 느끼고 싶습니다. 용인서리고려백자요지는 흙이 예술이 된 자리, 그리고 시간과 인간의 기술이 함께 녹아든 소중한 국가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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